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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을 짓는 법 <철학은 어떻게 정리정돈을 돕는가> 의 경우
    편집자가 쓰는 책 뒷담화 2012. 8. 28. 11:55

    '편집 후기'란 뭘까요? 오오, 독자여러분 이런 책을 이렇게 만들었으니 더욱 관심을 가져주시와요. 라고 말하는 건데요, 사실 이건 편집자가 말로 (아니 글로) 한다고 되는 건 아니고, 원칙적으로는 책이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어야 하는거거든요. 훌륭하신 선배 편집자님들은 그래서 "책이 스스로 말하게 하라" 라고 말씀하곤 하십니다. 아, 결국 편집후기를 쓰고 있다는 건 '책이 스스로 말하게 만들지 못한게 아닌가' 라는 자책이 담긴, 그러나 사실은 만드느라 고생한 이야기를 어깨에 들어간 힘 빼고 늘어놓는다거나 와우북페스티벌 가판대에서 이 책의 사실의 장점은 이런거, 저런거구요 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에디터가 하는 일종의 세일즈 행위라고 할 수 있는거죠. 뭔가 서두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철학은 어떻게 정리정돈을 돕는가>는 독일에서 철학상담실을 운영하는 이나 슈미트 박사의 한국에서의 첫 책입니다. (박사님 사진이 궁금하신 분들은 링크 클릭) 원제는 <질서 : 카오스를 사랑하는 법> 인데요, 이 책은 제목으로 드러나듯 철학적으로 질서에 대해 탐구하고, 카오스라는 질서를 새롭게 창조하는 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문제는 이렇습니다. '질서'도 멀게 느껴지는 단어이고, '카오스'는 더더욱 안드로메다처럼 와닿지 않는다는거죠. (심지어 너무 어렵게 느껴집니다.) 이런 경우 출판사는 과감하게 새로운 제목을 짓습니다.


    후보작들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무질서를 권함

    무질서의 즐거움

    불안할 자유

    How to love chaos 

    카오스를 사랑하는 법


    일단 100개 정도의 제목을 짓고, 그 중에 괜찮은 것들을 골라내 비슷한 것들끼리 묶고, 여기에 카피와 부제를 세트로 지어 붙입니다. 이런 세트를 몇 개 만들어요. 그리고 그걸 나란히 직사각형 위에 적당한 글씨로 넣어 인쇄를 해서 책상 위에 올려놓고 제목 회의를 합니다. 이런 과정을 몇 번 거치면, 어떤 제목이 가장 호소력 있는지, 지금 트렌드에 어떤 제목이 매력적인지 이 책에서 보다 강조할 점을 어디에 둘 것인지 등 많은 의견을 모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의 경우, 작년에 어크로스에서 출간된 <행복할 권리> 과 이어지는 '철학 실용서(?)' 시리즈로 나름 생각해보았었는데요. 철학으로 일상을 카운슬링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침 올해 상반기에는 정리정돈에 관한 책들이 자기계발 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구요. 이런 트렌드를 담아 결정된 제목이 <철학은 어떻게 정리정돈을 돕는가> 입니다. 책의 많은 부분이 결국 질서를 통해 자신의 혼란을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통찰이 담겨있고, 또 이를 위한 매우 실천적인 팁들을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표지에도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만, 포스트잇이 그려진 이미지를 활용해 제목과 어울리게 배치되었습니다. 


    +

    책을 만들면서는 참 여러번 원고를 읽게 됩니다. 이번 책의 경우, 철학사적인 질서 개념으로 인해 읽고나면 공부를 한 것 같다는 느낌도 들구요. 무엇보다도 줄곧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금 무질서하고, 조금 혼란스러워도, "이 정도 카오스는 괜찮아" 라는 자기만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질서' 라는 거죠. 이런 인생의 비밀, 하나쯤은 책을 읽으며 깨우쳐도 큰 기쁨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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