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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꼰대 사장의 <장사의 시대> 편집 후기
    편집자가 쓰는 책 뒷담화 2013. 3. 6. 11:58




    이 책 <장사의 시대> 원서 <The art of the sale>을 검토하며, 잠시 흥분했었다. 왜냐면 이 저자의 전작인 <Ahead of the curve>(한국어판 제목 : 하버드 MBA의 비)을 잠시 뉴욕에 있을 때 읽었는데, 이미 한국어판 판권이 팔려 내가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이 저자의 전작은 미국에서는 대형 셀러였는데, 한국에서는 많이 팔리지 않았다. 그서 우리 회사에 이 책이 들어올 수 있었겠지만) 이 책 판권이 살아있다니... 쾌재를 부르며 검토하기 시작했고, 역시 내용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임프리마코리아 에이전시의 도움을 받아 계약을 무사히 마치고, 심리학 분야의 책을 많이 번역했던 번역가이자, 후배인 문희경에게 책의 번역을 부탁했다. 그리고 번역 원고도, 무사히 제 날짜에 들어왔다. 원고를 받아들고는, 이 책을 많이 팔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검토자였던 김** 편집자도 책을 재밌게 읽고 훌륭한 소견서를 만들어줬고, 이 책의 편집을 함께 한 우리 회사 선임 편집자인 이** 씨는 연신 이 책 정말 재밌다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원고도 좋고, 국내에서 유명하지는 않지만 저자의 스토리도 훌륭했다. 잘 만드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회사 식구들은 이 책을 재밌게 읽었지만, 이 책의 원서 제목이 '세일즈의 기술'이었기 때문이었다. 세일즈라는 주제는, 경제경영서 시장에서 그닥 인기가 없는 것이고 게다가 여러 보험 판매왕들이 낸 수 많은 세일즈 비법서들이 시장에는 가득했다. 독자의 머릿속에 이 책이 '세일즈'라는 개념으로 다가간다면 이 책은 여럿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일즈를 어떻게 독자의 머릿속에서 다른 개념으로 바꿔 위치이동시킬까... 고민은 시작되었고, 교정교열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책의 컨셉과 포지셔닝을 확정하지 못해 디자인 발주도 못하고 있었다. 물론 삽화 발주도 늦어졌다. 


    우리 회사에서는 책을 만들며 항상 이런 고민에 봉착한다. 공급자(출판사 편집부)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과, 수요자가 '좋을 것이라 판단해 구매하는' 그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꿀 것인가? 우리는 '세일즈'라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무엇인가를 판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어떻게 잘 팔 수 있는지, 인생과 세일즈에 대한 관계를 원고를 읽고 나서 좋다고 여긴 것이지만, 독자들은 제한된 정보(광고를 하지 않은 책인 경우에는 '책 하나만 존재하는' 그 상황에서) 속에서, 게다가 매력을 뽐내는 수많은 경쟁서들 속에서 공급자의 마음을 초능력을 동원해 읽어주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책에 관한 설명을 짧고 명쾌하고 매력적으로 바꾸기 위해, 제목을 달고 부제를 달고 카피를 달고 매력적인 책표지를 만드는 그 일을 하기 위해 답답함을 참고 머리를 맞대고 '정답이 없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용을 쓴다. 괴로운 일이고, 결론을 냈다고 해서 무언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정답 없는 망망대해를 헤매고 있던 어느 날, 시장 조사를 나갔다 온 마케터가 한 마디를 꺼낸다. "이 책은 세일즈를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한 번도 팔아보지 않은 사람을 독자로 타겟팅해야하지 않을까요? 은퇴 후에, 연필 한자루 팔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 첫 번째로 원고를 검토하고 소견서를 냈던 편집자 김**씨도 "저자가 체험한 스토리... 이게 요새 출판에서 중요한 트레인 것 같아요. 그 점에서 이 책 매력있어요."라고 의견을 낸다. 이렇게 머리와 머리가 부딪쳐 스파크를 내고 있는 과정에, 이 책의 편집자인 이**씨가 세일즈를 장사로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요. 창업 열풍에, 세일즈라는 말의 협소함보다는 장사라는 말이 훨신 더 피부에 와닿는 것 같아요. '장사의 시대'라고 제목을 짓는 게 어떨까요? (제목신이 강림한 게 틀림없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고 (대표인 나만 빼고... 뭔가 속에서 해결되지 않는 게 있었다. 참 둔하다.) 제목이 결정되었다. 난 의견들을 종합해 표지문안과 목차를 다듬었다. 정리하고 보니, 식구들이 편집회의 때 꺼낸 말을 엮은 것 뿐이다. 하지만 마음에 들었다. 함께 일한다는 것이 이런 시너지를 내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어 괜히 기분이 좋았다. 


    자칫 지루해보일 수 있을 것 같아, 경쾌한 펜선 느낌의 삽화를 발주했고 디자인 업계 최고 중 하나인 이석운 실장에게 디자인을 부탁했다. 그리고 물건이 나왔고 우리 회사 식구들끼리는 대만족이었다.




    책이 출간된지 이제 딱 이제 2주, 다행히 반응은 나쁘지 않다. 옛 회사 때였으면 마케팅비를 쏟아부어 셀러를 만들 것이라고 자신했을 것 같은 반응이다. 하지만 환경과 조건이 다르다. 이제부터 풀어나가는 건 우리에게 새로운 모험이다. 베스트셀러가 되면 정말 좋겠다. 아니 되야 회사가 좀 살 것 같다. 하지만 책 만들어가며, 회사 식구들에게 지혜를 구한 경험도 그만큼 값지다. 함께 읽고, 함께 이야기를 더 많이 해야겠다. 그래야 같이 일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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