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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후기] 편집자로서 저자와 함께 한다는 것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경우
    편집자가 쓰는 책 뒷담화 2013. 5. 23. 19:05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편집후기를 쓰네요. 그만큼 '거리두기'가 쉽지 않았던 책이었습니다.

    (이런 감성 '돋는'... 아니 '축축한 편집후기'라니...! 부담스러운 분들은 어서 '뒤로'를 눌러주세요 >_<!)


    이 책을 기획한 건... 엄밀히 말하자면 아마도 5년 전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 한윤형씨를 어떤 '공간'에서 만났는데, 그 공간은 그야말로 '세대론의 소용돌이'의 중심 같은 곳이었으니까요. 당시 편집자가 아니었던 저는, 언젠가 '편집자'가 되고 싶었고, '그 언젠가' 편집자가 된다면 한윤형씨의 책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치만 그게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될지 당시로서는 알 수 없었습니다. 저자와 저는 그 공간에서 상근자와 지원자로 만나 '인사를 나누는 사이'였고 지냈고 그렇게 시간은 지났습니다.


    몇 년 후, 저는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편집자가 되었습니다. 그 사이 몇 번 더 저자님을 만날 수 있었고, 그때마다 출판 이야기나 책 이야기가 아닌, 꽤 다양한 수다를 나누고는 했습니다. 물론 술도 꽤 마셨네요... ^^; 5년 전 만났던 한윤형씨는 그 사이 몇 권의 책을 더 내고, (원래도 나름 '네임드'였지만) 더더욱 분명한 자기 논리를 가지고 있는 '우리 세대의 가장 빛나는 필자 중 한 명'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쉽사리 책을 내자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편집자인 제 머리에 아직 '책의 상'이 잘 그려지지 않았거든요. 저자는 있는데, 책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윤형 저자님은 정말 너무나 바쁘셨고, 많은 글을 쓰고 계셨거든요.


    흔히들 출판사에서는 '국내 기획은 10개를 시도해 1개가 성사되도 대단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기획단계에서 책의 주제를 잡고, 저자를 섭외하고, 함께 구성을 만들며, 컨셉을 짜고 계약을 할지라도, 원고를 완성시켜 출판에 이르는 데까지는 2-3년이 족히 걸리고는 합니다. 이 기간을 저자와 함께 고민하고 책의 꼴을 생각하며 원고를 숙성시켜 나가는게 많은 편집자 선배님들이 공을 들이는 일이죠.


    이때 제 등을 떠밀어주신 것은 늘 이것저것 가르쳐주시는 대표님이셨습니다. (아... 애사심 돋는군요! 네네, 보시라고 썼... 후다닥 ) 어크로스는 편집부 식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직접적인 피드백을 모두 함께 주고 받습니다. 많은 기획도 그렇게 논의되고, 함께 몇날 며칠을 고민하고, 원고를 같이 읽고, 제목 회의도 모두 모여 몇 번을 하곤 합니다. 그 와중에 '일에 발동을 거는 건' 모두의 응원과 감사한 의견들이었습니다. 그런거 있잖아요. 할까말까 망설이는데 툭 등 떠미는 한마디에 '결심'하게 되는 거.


    아마. 그렇게 시작된 것 같습니다. 먼저 그동안 저자와 해왔던 고민들을 바탕으로 출판사에서 생각하는 문제의식을 놓고 어떤 책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그게 바로 '오늘날의 잉여 문제'였습니다. 다행히도 저자가 여태 썼으나 공적으로 공개하지 않은 글 중에는 '잉여스러운 글'들이 많았고, 이와 결을 함께하는 매체에 발표된 '사회과학적인 논의'들의 원고들도 꽤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의외로 이 '잉여스러운 글들'이 너무 재밌었습니다. 그래서 역으로 이것들을 살릴 방법을 고민했고, 편집을 하면서도 이 부분은 '큭큭' 웃음을 자아내고는 했습니다.


    '잉여'를 컨셉으로 두고 '세대론의 범람' 속에서도 정작 당사자인 청춘의 이야기가 없다는 사실에 착안해, '청춘 당사자가 직접 본 한국의 청년 세대'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로 한 것이죠.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문제 의식은 '청년 세대의 문제는 그들 자신 만의 문제가 아닌 그들의 부모, 그리고 더 나아가 한국 사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세대론은 '특정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이렇게 된 원인이자 결과라는 것. 그래서 우리는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 아래서 수많은 한국 사회의 문제를 살피면서, 한국 사회가 나아갈 길에 대한 조심스러운 (저자는 선동하거나 단언하기보다 메타비평을 통해 조심스러운 해답의 과정을 제시하는 편입니다) 모색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정치평론과 사회비평을 오래 해온 자신의 '날카로운 관점'을 이 문제에 적용하면서도,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시대와 사회'를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많은 원고들이 이 관점으로 재해석되고 고쳐졌습니다.


    씨줄과 날줄처럼 사적인 에세이와 공적인 글들을 엮을 방법은 '부'를 나누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에세이 같은 1부와 사회과학적인 논의를 진척시키는 2-3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재밌게도 독자들은 1부를 좋아하는 경우와, 2-3부의 논의를 더 좋아하는 경우로 나뉘기도 합니다만, 공통적으로 '에세이처럼 잘 읽힌다'고 하시더라구요. '순위는 정치사회 분야에서 챙기고, 독자는 에세이처럼 편안하게 만나자'는 나름 의도하지 않은 전략이 조금은 먹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후분석입니다)


    조심스럽게 (사실은 술을 막 먹인 뒤) 계약서에 사인을 받고, 저자와 머리를 쥐어뜯으며 원고를 수정해나가던 시절의 사진이 바로 위의 사진입니다. 공휴일이던 '삼일절' 저자를 어딘가 가두고(?) 작업을 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왠만한 카페들은 눈치도 보이고, 신경이 쓰이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아파트 단지 내 카페로 저자님을 모셨습니다. 낯선 환경에서 교정지를 펼쳐놓고, 저자의 프로필 사진을 찍고, 편집자가 체크해서 넘긴 원고를 저자는 그 자리에서 수정을 하고... 참 고생하셨습니다. 저자님.


    덕분에 이 책은 편집자도 저자도 독자도 꽤 만족하는 책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보고는 합니다. 사진처럼 편집자는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 엄청난 손짓처럼 늘 저자를 설득하면서, 저자를 끌어내고, 또 저자에게 배워나가는 일인 것 같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저자님과 함께 고군분투하면서요.


    (아아, 여전히 책과 '거리두기'가 되지 않는군요. 그런 의미에서는 실패작일지도 모르지만, 앞으로 또다른 국내 기획서를 만들 때는 더 많이 저자를 사랑해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다짐해봅니다.)


    덧. 이렇게 한 권의 책이 나왔고, 한 명의 편집자는 배워나가고, 한 명의 저자는 책 한 권의 이력을 추가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많은 책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 태어나는 것이겠죠...? (그런데 소멸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ㅜㅜ) 더욱 많은 사랑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 트위터에서 @gulthee인 편집자 미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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