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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짓기의 한 예]<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제목 비하인드 스토리~편집자가 쓰는 책 뒷담화 2013. 7. 18. 10:23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여전히 훌륭한 제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책을 기획하고 저자와 계약했던 지난 가을, 출판사에서 애초 목표로 한 것은 ‘잉여’에 대한 책이었다. ‘잉여 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청년 세대의 자조적 냉소’는 오늘날의 젊은 세대의 특징인 동시에, 근대 이후 꾸준히 변화한 사회가 도달한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들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로 저자가 ‘잉여’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요즘 2,30대 문화연구자들 중에 논문 주제나 단행본 주제로 ‘잉여’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저자는 또래 연구자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싶어하지 않아했다. 기획자로 선점하는 것이 중요한지 확신이 들지 않았고 저자에게 원고 외에 다른 부담을 감당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두 번째 문제는 저자가 너무 바빠 원래 생각한 ‘잉여’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를 책에 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이 책은 ‘세대론’ 종결자를 목표로 하게 되었다.
어크로스는 편집회의를 모든 직원들이 모여서 하는데, 책 설명의 첫 줄이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였다. 제목 후보안보다 이게 좋다는 의견이 많았다. 저자의 글이 선동적이지 않은 탓에 재밌는 책이긴 하지만, ‘메시지’가 와닿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따라서 제목은 다소 선동적일 필요가 있었다. 이 경우 제목이 그 역할을 맡게 해버린 경우다. 또한 ‘잉여’라는 구체화된 이미지를 주는 것은 저자였기 때문에, ‘잉여’를 말랑말랑하게 풀어 저자와 엮은 부제 ‘청년 논객 한윤형의 잉여 탐구 생활’을 붙였다. (저자에게 출판사(정확히 말하면 '대표님'이 반농담으로 제안한 제목 중에는 <서울대 나와서 죄송합니다>라는 엄청난 제목도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저자가 '졸업'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고려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역시나 조심스러운 성격의 저자는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보다 <청춘을 위한 나라‘도’ 없다>가 어떻겠냐고 물어왔는데, 당시 저자와 술을 마시던 또 다른 인기 청년 필자 분께서 “이왕 하려면 쎄게”라고 의견을 주셨다고 한다. (ㅎ선생님, 감사합니다) 얼마전 트위터를 검색하다 보니,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의 제목안 중에도 이 제목이 있었다고 한다. 페이스북에 이 책을 올려놓고 보니, 많은 청년 세대가 이 책 제목에 공감을 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멋진 문장은 오래 간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흔히들 책을 줄여 부르니 이 책은 “청춘”으로 불린다는 사실이 기획자의 작은 기쁨이다.
2013년 5월 20일 자 기획회의 344호 책 제목 특집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제목 편에 실렸습니다.
함께 뽑힌 리스트도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기고 글이라 딱딱합니다. 이게 이 책에 대한 가장 메타한 이야기들일 거에요.
- 편집자 미오씨 씀.
* 이건 (특별 공개하는) 처음 들어왔던 표지 시안~
이 표지 때문에 전, 오실장님을 존경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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